
SAFE
치타 @ciabatta_63194
[레이] 『SAFE』
목욕탕의 습기가 천장에 물방울이 맺히게 한다. 물방울이 떨어져 어깨를 때린다.
목욕탕 문을 열자 형제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닥에 자국을 남긴다.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털면서 김이 서린 창문을 바라봤다. 손으로 창문을 닦자 바깥이 보였다.
뒤가 소란스러워서 시선을 옮겨보니 다들 옷을 뒤집어쓰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옷을 제대로 입히고 주의를 준 후, 침실로 올려 보냈다.
욕실 한쪽에는 수건과 옷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김이 서린 창문.
물기로 왜곡되어 보이는 바깥.
옷으로 만들어진 새하얀 산.
어릴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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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때 여름, 비가 오랫동안 내린 적이 있었다. 여름에 장마가 오는 건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때 장마는 세상이 물에 잠기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게 될 정도였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는 몇 주간 계속되었다.
창문엔 항상 김이 서려있었고 손으로 닦으면 남은 물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 왜곡되어보였다.
욕실에는 빨아야할 빨래가 점점 쌓여갔고 새하얀 옷더미 산은 마마만큼 높아져있었다.
비가 내리기 때문에 밖으로 외출하는 건 금지되었고 한동안 하우스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이게 심심했던 건지 엠마와 노먼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와서 책을 읽는걸 방해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게 계속 반복되면서 괜찮음보단 귀찮음을 올라왔다.
귀찮음이 정점에 올랐을 때 나는 책을 덮고 두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둥이 칠 때 배를 내놓고 있으면 도깨비가 배꼽을 가져간데"
이건 꽤 효과가 좋았다. 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경악한 표정을 하며 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워했다.
이후, 나는 천둥이 칠 때 마다 도깨비가 찾아왔다며 두 사람에게 겁을 줬다. 그때마다 엠마와 노먼은 내 침대의 이불속에 들어가 조용히 속닥거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천들이 스치는 소리.
조그마한 크기의 목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들이었다.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는 두 사람이 내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장마가 끝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크게 벗었다.
길었던 장마가 끝난 후에도 엠마와 노먼은 시도 때도 없이 내 침대로 들어왔다. 천둥이 칠 때는 당연했다. 마마에게 체스로 지고 작전회의를 한다며 들어오고, 숨바꼭질을 한다고 들어오고, 심지어 엠마는 나랑 싸웠을 때도 들어왔다.
뿌루퉁한 얼굴만 이불 밖으로 꺼내고 삐쭉 나온 입으로 "레이 나빠! 미워!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 난감한 상황은 꽤 많이 일어났다.
왜 내 침대로 들어오는지 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레이의 침대는 비밀기지거든!!!"
...웃음이 나왔다. 난감함과 황당함이 섞인 웃음이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집에 하나쯤은 비밀기지를 만든다. 그 비밀기지는 작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집이고 안식처다.
너희는 내 침대가 하우스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나쯤은 만든다는 그 비밀기지가 하필 내 침대였다는 게 귀찮았지만, 불만이 없었다.
내 침대 속에 들어온 너희와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내 손을 잡은 너희의 손을 보며 종종 생각했다.
이 온기를 계속 잡고 있을 수만 있으면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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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회상에 잠겨있던 나를 깨운 건 노먼의 목소리였다.
"엠마, 식당 청소하자."
나는 욕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계절이 바뀌면서 두 사람이 내 침대에 들어오는 일은 없어졌다. 그건 나이가 들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비밀기지따위 없어도 이 하우스가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식처.
안심할 수 있는 곳.
안전한 곳.
하우스 자체가 비밀기지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
엠마
노먼
미리 사과할게.
"아닐지도 몰라."
나는 너희의 비밀기지를 부술 거야.
"아까 목욕탕 창문으로, 멀리 문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어."
이 하우스의 정체를 알려줄게.
"배웅하러갔던 마마도 여태 안 돌아왔고..."
그러니까...제발...
"코니도 아직 출발 안 했을지 모르지."
❝안전하게 돌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