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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녹아서 흐르고

다담 @dadam_tpn​

1.

 

레이가 하우스에서 읽은 책 중에는 소설도 꽤 있었다. 아이들이 고작 열두 살에 출하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마마를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길고 빽빽했다(물론 그레이스 필드의 식용아들은 보편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작가 대부분은 여름에 지나친 영감을 받는 것 같았다. 여름은 찬란하고, 나른하고, 아이를 성장시키는 계절이었다.

 

레이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소설을 덮었다.

 

그레이스 필드의 책벌레, 식용아, 그리고 지금은 탈출한 식용아인 레이의 정의는 이랬다. 여름은 에어컨이 없으면 온 인류를 타락시키는 생지옥이다.

2.

 

“길다, 나는 롤모델을 정했어.”

 

“아주 기대가 된다.”

 

기대 따위는 애저녁에 갖다버린 표정이었다.

 

“첫 번째는 선풍기를 발명한 사람이야.”

 

길다는 누가 선풍기를 발명했는지 아직까지도 불명확하다고 설명하는 대신, 에어컨을 발명했을 게 분명한 돈의 두 번째 롤모델을 알려주기로 했다.

 

“두 번째는 노먼이야.”

 

“이름은 윌리스 캐리어야. ……뭐?”

 

도대체 발상이 어디까지 튄 건지 길다가 고민하다가 포기할 찰나 돈이 씩씩하게 말했다.

 

“얼음 제왕이잖아! 이 날씨에 살아남기 정말 좋은 별명 아니야?”

 

“…그래, 적어도 분위기를 얼려버리는 것까진 성공했다. 절반을 이뤘네.”

 

길다가 빙그레 웃었다. 비록 눈치가 좀 느리다 해도 거의 날 때부터 함께였던 친구를 잘 알고 있는 돈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뒷걸음질쳤다.

 

“그리고 나머지 제왕은 내가 할게. 지금 이런 잡소리를 하려고 날 백화점에서 끄집어냈어?”

 

“아니, 길다, 잠깐만, 그거 내려놓고 말, 으악!”

 

마루에서 아이스크림을 빨며 두 다리를 흔들거리던 필은 길다가 돈을 잡아먹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 좋을 때야,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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