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번째의 여름
if.아이들이 인간세계로 탈출한 후의 이야기
이리어리 @E_riary
※ 엠마를 중심으로 노엠레를 힐링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글입니다.
※ 온전히 저만의 캐해석이 가득합니다.
1.
선풍기가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불고 있었다. 엠마는 그 앞에서 멍하니 바람을 쐬고 있었다. 풀 속 벌레들이 합주하듯 나란히 소리를 내고, 더위가 그사이에 존재했다. 어느 여름날의 밤이었다.
자연히 눈이 떠져 물을 마시러 나온 엠마는 잠이 오지 않는 김에 선풍기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테이블에 엎어져 있었다. 테이블의 냉기를 조금이라도 느껴보자 하는 심보였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본 엠마의 시야에 집안 풍경이 들어왔다. 엠마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어둠이 내려앉아 컴컴했다. 그 어둠 속을 이리저리 헤아려보다가, 엠마는 문득 서늘함을 느꼈다. 무언가 어렴풋한 형체가 어둠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엠마가 두고 온 것들이었다. 그들이 뒤로 하고 온 겨울이 그 안에 있었다. 그 어둠이 입을 벌려 엠마를 부르고 있었다.
엠마.
엠마는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듣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마치 노먼과 레이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그레이스 필드의 아이들 목소리인 것도 같았고 엠마가 미처 손을 잡아주지 못한 이의 목소리 같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 목소리는...
“엠마. 졸리면 들어가서 자.”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였다. 잠자고 있는 다른 이들을 생각해선지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레이? 엠마의 말에 레이가 응답하듯 눈을 굴렸다. 마치 안자냐고 타박하는 눈초리였다. 갑자기 눈이 떠져 나오게 되었다고 변명하려던 엠마는 어느 순간 억울해져서 그럼 레이는? 하고 대답했다. 베개와 여름용 이불을 들고 있던 레이는 뭐라 답하려다가 포기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레이의 시선이 가리킨 곳을 따라 바라보니 노먼이 엠마의 방문 앞에 기대 주저앉아 자고 있었다. 엠마는 자신이 지나쳐나온 곳에 노먼이 기대어 자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자신이 노먼을 눈치 채지 못한 것에도 놀랐으며 노먼이 엠마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잠들어있단 사실도 놀라웠다. 동시에 몇 년이 지났으니까, 하고 납득했다. 조그만 기척에도 깜짝 놀라곤 하던 자신들은 확실히 이 평화로운 현실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왜 여기 잠들어 있는 거야?”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던 레이는 곧 생각을 고쳤다. 자신이 변명한다고 엠마가 속지도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었다.
“가끔 노먼이 밤중에 너랑 내방을 확인하고 가더라고. 아까 내방에서 날 만나고 갔으니 네 방에 갔을 거 같아서. ...요즘엔 거의 안 그랬어.”
변명처럼 나온 레이의 뒷말을 눈치 챘음에도 엠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하고픈 말은 많았다.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 내가 자고 있으면 노먼은 항상 내방 문 앞에 있었던 거야? 레이는 언제부터 눈치 챘던 거야? 여러 가지 묻고 싶다가도 엠마는 과보호라고, 장난치며 넘어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엠마의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노먼덕분에 내가 여태껏 잘 잘 수 있었나 봐.”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레이의 시선이 살피듯 엠마를 흩었다. 그 시선들은 곧 노먼을 향하다 무언갈 생각하듯 허공을 짚었다. 그러던 레이한테서 여러 일이 있었으니까,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언뜻 보면 엠마의 말에 어울리지 않는 답이었다. 동시에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답이었다.
여러 일이라, 엠마는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여러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새 19살이 되어있었고, 이곳에 도착한 지 네 번째 해였으며, 그렇게 그들은 네 번째의 여름을 겪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