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열대야

한여름 @mysurnrner

 

 

1

소년과 청년의 모호한 경계를 걸치고 있는 남자가 계산대 위를 손가락으로 두세 번 두드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직원이 자동응답기의 그것처럼 무엇으로 주문하시겠어요? 라고 물었다. 잠시 고개를 기울이며 머릿속으로 메뉴를 고르던 남자는 곧 세 가지의 메뉴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더블 치즈버거 세트 하나, 시저 샐러드 하나, 바닐라 셰이크 라지 사이즈로 두 개 주세요. 홧홧하고 후덥지근한 바깥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더블 치즈버거 세트 한 개, 시저 샐러드 한 개, 라지 사이즈의 바닐라 셰이크 두 개 주문받았습니다. 계산대 위에 부착된 바코드를 하나씩 찍으며 주문을 확인한 직원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포장해드릴까요?

 

새하얀 머리칼이 싸구려 조명 빛을 받아 파랗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그 남자가 내리깐 하늘색의 눈동자 탓에 착각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간의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매장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의 열기에서부터 벗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엄청난 쿨톤이잖아⋯⋯. 남자의 외양을 티 나지 않게 훑어본 직원이 마음속으로만 감탄하며 생각했다. 아니요, 그냥 주세요. 그런 직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대답했다. 15달러 63센트입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지갑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딱 맞는 금액만큼의 화폐를 꺼낸 남자는 직원의 손 위로 건넸다. 손님에게 항상 거스름돈을 주던 직원은 남자의 의도치 않은 친절에 아주 잠깐 행복해졌다.

 

감사합니다. 계산을 마치고 진동벨을 받아 든 남자가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이었지만,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실린 목소리만큼은 청량하게 느껴졌다. 그때서야 문득 직원은 일면식도 없었던 손님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보고 싶어졌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직원은 대단치 않지만 소소하게 소설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였고, 요즈음 차기작으로 내놓을 예정인 로맨스 장르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 설정으로 골머리를 앓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소설에서 걸어 나온 듯한 미남이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사고방식이 그런 쪽으로 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뒤늦게 직원은 정신을 차렸다.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 인파 사이를 헤치고 가는 남자의 등 뒤로 직원이 목소리를 높여 진심이지만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과연 저 남자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았을까? 직원은 저 남자가 아니었으므로 모를 일이었다. 선명했던 남자의 새하얀 이미지가 흐려져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들을 응대하던 직원은 기계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조금 전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놓지 못했다. 하지만 저런 온건한 모습을 뒤흔들 수 있는 감정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던 사랑이 아닌가⋯⋯. 뭔가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은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차기작의 설정을 차근차근 하나씩 갈아엎기로 생각했다. 안데르센의 작품 중 하나인 <눈의 여왕>의 카이와 게르다 같은 분위기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