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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녹아서 흐르고

다담 @dadam_tpn​

7.

 

눈을 떴더니 어린 엠마가 있었다.

 

하우스인가, 모든 게 한나절 꿈이었나 싶어 노먼은 잠시 아득함을 느꼈다. 목이 영 칼칼했다. 그러다 너머의 진짜 엠마를 보았다. 습관처럼 혀를 차는 레이의 모습도 보였다.

 

“무슨……?”

 

“일어났냐.”

 

“괜찮아?”

 

친구들의 걱정을 한마디씩 들으며 노먼은 몸을 일으켰다. 뜬금없는 것 투성이였다. 새하얀 천장에, 낯선 냄새에, 팔꿈치 옆의 아이까지. 노먼은 눈을 한 번 비볐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어린 엠마가 아니라 캐롤이었다. 노먼은 지금까지 캐롤을 정면에서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를 볼 때마다 늘 숨던 작은 아이. 캐롤이 입 속으로 뭔가 웅얼거리다 불쑥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이거!”

 

얼떨결에 받은 것은 종이컵이었다. 일순 과거 어느 날의 따뜻한 추억이 눈앞을 채운다. 실 전화기는 아니었지만, 노먼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다가 하늘색 사인펜으로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삐뚤빼뚤한 그림.

 

“캐롤, 이거 혹시 나 그린 거니?”

 

캐롤은 아직도 노먼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학교에서 인형극 하느라 만든 건데, 음, 막대가 떨어져 버렸어. 미안해. 선생님이 제일 무서운 사람 만들어보래서 만든 건데…. 흡!”

 

아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막았다. 노먼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종이컵을 품에 안고 캐롤의 곱슬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제일 무서워? 맞아, 세상에서 노먼이 제일 무서우니까 다른 사람은 겁낼 필요 없겠다. 그치?”

 

캐롤이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배시시 웃는다. 노먼은 문득 그 너머로 비슷하게 미소짓고 있는 엠마를 보았다. 여름이었다. 뜨거워서 모든 게 녹아버리는.

 

레이는 노먼과 엠마를 번갈아 본 뒤 씩 웃었다.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는 재미가 없는데. 하지만 세계를 탈출한 식용아들에게 이 정도의 단조로움은 허락될 법했다. 창밖은 펄펄 끓었고 사람들은 문을 열 엄두도 못 내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레이는 생지옥이라는 맨 처음의 평가를 정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교 쪽을 공부하고 싶다거나 그러면 일단 나랑 같이 초청된 데 가자거나 하는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 조금 너그러워진 나머지 뭐가 자라긴 하는 계절이라고 약간의 칭찬을 덧붙인다.

 

“그래, 레이도 같이 가자! 나만 죽을 수 없지!”

 

“뭐 이놈들아?!”

아무래도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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